
철학 신간을 사서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이야길 듣습니다.
"그건 어디에 써먹어요?"
세상 사는데 하등의 도움도 안 되는 학문,
당장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할 시간도 없는데,
복잡하고, 어렵고, 여러 번 곱씹어야만 살짝 이해가 되는,
고리타분한 그런 것.
빠르게 결과가 보이길 바라는 성향이 강한 한국에선,
답답해 보이는 분야입니다.
이런 평가가 전 참 아쉽습니다.
정말 그렇게 보이거든요.
올해 4월, 아주 재미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행의 가장 끝단에 서있는 연예 기획사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기자회견이었죠.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녀가 아이돌을 프로듀싱할 때 사용한 개념이 슬쩍 나왔죠.
"정, 반, 합"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변증법의 3단계!
제가 타인에게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개념입니다.
현재 철학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개념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건 저의 주장입니다만……)
그런데 의외로 한국에선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죠.
그것은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여 유물론적 변증법을 주장하며,
공산주의 선언을 한 칼 마르크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빨갱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식자를 탄압하던 시대,
야만의 시대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나라입니다.
그 덕에 한국의 철학교수들은 헤겔에 대해서 연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판 것은 헤겔이 주로 비판했던 임마누엘 칸트였죠.
그랬던지라 세계적인 칸트의 연구는 한국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헤겔은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마지막 근대인"입니다.
이 말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어떤 이는 이를 가지고,
그가 이미 지난 세대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의미로 해석합니다만,
사실 이 말은 그에 대한 최고의 찬사입니다.
그의 철학으로 인해서 근대라고 불리는 시대가 정리되고,
현대라고 정의하는 신 시대가 시작했다는 거니까요.
그는 진정한 현대(Mordon)의 창조자니까요.
그의 ‘정반합’의 강의는 1801년 예나 대학에서 강의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정확하게 변증법이라고 강의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만,
1801년부터 강의에서 사상을 발전시켜왔죠.
그러다가 1807년 정신현상학이란 책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변증법적 방법론을 처음 체계적으로 소개합니다.
정신현상학 (book)
정반합의 개념은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正, thesis): 어떤 개념이나 이론이 제시됩니다.
- 반(反, antithesis): 그 개념에 대립되는 개념이 나타납니다.
- 합(合, synthesis): 정과 반의 대립이 해소되고 두 개념을 포괄하는 새로운 개념이 형성됩니다.
간단하죠?
이것이 아주 특별해지는 것은 단순히 3단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으로 만들어진 것이 다음의 단계를 거쳐,
새로운 "정반합"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 새로운 출발점: 합은 이전 단계의 논의를 종합하여 새로운 시작점이 됩니다.
- 더 높은 차원으로의 이동: 이 새로운 정은 이전의 논의보다 더 복잡하고 심화된 수준에서 시작됩니다.
- 새로운 반의 등장: 이 새로운 정에 대해 다시 반대되는 견해(반)가 나타납니다.
- 지속적인 발전: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지식과 이해가 계속 발전합니다.
즉 세상이 끊임없이 정반합의 구조로 연결되어서 변화된다는 겁니다.
이런 해석은 지금까지 세상이 변화해온 모습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헤겔이 살던 시대까지,
밝혀져있는 역사는 변증법으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설명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정반합의 변수를 아직 못 찾았을 뿐이었죠.
그러다 보니, 이 변증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단 판단도 황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몇몇 이론을 더해서 그걸 하고,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견한 사람이 칼 마르크스죠.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안 그래도 길어진 이 글이 몇 배는 더 길어지니,
넘어가고요.
실제로 뉴 진스를 프로듀싱 한 어도어의 민희진대표(전을 붙여야하나)는
정반합의 개념으로 아이돌을 프로듀싱했습니다.
어떤 아이돌이 인기를 끌면,
거기에 반이 되는 아이돌을 기획하고,
다시 합이 되는 아이돌을 기획하는 방식으로요.
여기에 아이돌이 가지는 패션이나 음악 스타일 역시,
변증법적 사고를 적용하여 기획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패션계에서 미래 패션을 예측할 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걸 간단하게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 정(Thesis): 현재의 패션 트렌드 특정 시기에 지배적인 패션 스타일이 ‘정’이 됩니다.예: 1950년대의 풍성한 스커트와 잘록한 허리라인
- 특정 시기에 지배적인 패션 스타일이 ‘정’이 됩니다.
- 예: 1950년대의 풍성한 스커트와 잘록한 허리라인
- 반(Antithesis): 기존 트렌드에 대한 반작용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스타일에 대한 반발이 생깁니다.새로운 세대, 사회적 변화, 기술 발전 등이 이를 촉진합니다.예: 1960년대의 미니스커트와 직선적인 실루엣
-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스타일에 대한 반발이 생깁니다.
- 새로운 세대, 사회적 변화, 기술 발전 등이 이를 촉진합니다.
- 예: 1960년대의 미니스커트와 직선적인 실루엣
- 합(Synthesis): 새로운 트렌드의 탄생 기존 스타일과 새로운 요소가 결합하여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집니다.이는 이전 스타일들의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합니다.예: 1970년대의 다양한 길이의 스커트와 혼합된 실루엣
- 기존 스타일과 새로운 요소가 결합하여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집니다.
- 이는 이전 스타일들의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합니다.
- 예: 1970년대의 다양한 길이의 스커트와 혼합된 실루엣
- 새로운 정(New Thesis)으로의 전환 이 ‘합’의 스타일이 새로운 ‘정’이 되어 다시 순환을 시작합니다.시간이 지나면서 이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반’이 나타납니다.
- 이 ‘합’의 스타일이 새로운 ‘정’이 되어 다시 순환을 시작합니다.
- 시간이 지나면서 이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반’이 나타납니다.
재미난 건 이런 형태의 트렌드 변화 때문에,
우리는 몇십 년마다 유행이 돌고도는 것처럼 느끼게 되죠.
뜬금없이 이렇게 철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장은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인데,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기획을 하는 데 있어서요.
기획은 논리를 세우는 일입니다.
논리는 백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단단한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기획하는 방법에 대해서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하고선,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 명에게 물었을 때,
나온 이야기가 이거더군요.
아이디어를 모으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은데,
이걸 역어내는 게 어렵다고요.
그래서 그때 필요한 게 바로 철학입니다.
특히 추천하는 이가 둘 있는데,
한 명은 오늘 소개한 헤겔이고,
다른 한 명은 내일 소개할 비트겐슈타인입니다.
from 무상
사족: 아마도, 명절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을 듯합니다. 명절이 끝나고는 몇 주 전부터 준비하는 콘텐츠들을 업데이트할 듯합니다.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