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9 마음나누기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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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모리스 마테를 링크’의 희곡 ‘파랑새’에는
틸틸과 미틸이란 주인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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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릴뤼느란 요정의 도움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파랑새를 찾아
환상 세계를 여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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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끝에 자기 집에 있던 파랑새가 진짜 파랑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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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보면,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일상에 있다는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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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은 1908년 발표되었고,
오늘날까지 다양하게 연극 무대에 오르고,
다양한 미디어로 재탄생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명작이지요.
(모리스가 1911년 노벨상을 받는 데엔 이 작품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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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진정한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주변에 있다는 내용이었다면, 그렇게 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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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지혜는 기원전 300년 전에 아리스토 텔레스가
행복은 도덕의 실천과 일상적인 활동에서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고,
공자와 노자 역시 논어와 도덕경에서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일상에서 있다고 이야기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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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에도 행복한 영혼을 가진 목동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큰 흐름에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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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는 이야기를 각색한 건인데,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사실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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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에서 주인공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놀랍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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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희곡을 보는 것과,
파랑새가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희곡을 보는 것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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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희곡을 몇 번이고 보게 되는 어른들이
내용을 다 알고 보면서 깨닫고 멍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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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 번 볼 때와 완전히 이해하고 다시 볼 때,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는 작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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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아온 요정 베릴뤼느에게
자기 집 새장에 있는 파랑새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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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릴뤼느는 이 새는 자신이 찾는 파랑새가 아니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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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의 처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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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남매는 이 파랑새는 진짜가 아니구나,
모험을 통해서 파랑새를 찾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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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모험을 하고 돌아와선,
자신의 집에 있던 파랑새가 진정한 파랑새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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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에는 이웃집에 아픈 소녀에게,
자신들의 파랑새를 주어 병을 낫게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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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순간 파랑새는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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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자리에 "진정한 행복"을 넣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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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리스가, 어떤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지 알아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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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진정한 행복은 나의 진정한 행복과 다릅니다.
세상에 나아가서 다양한 경험과 교훈을 얻으며,
현명해지고, 많은 능력을 가지게 될 수는 있지만,
여전히 나의 진정한 행복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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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정한 행복은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위대한 선택을 할지라도,
그것이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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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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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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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놀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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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파랑새를 책으로 읽고,
관련된 이야기를 교재로 공부하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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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아이들과 아동 연극을 보러 가서
바위로 머리를 땅하고 맞는 충격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놀라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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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큰 지혜를 얻는 느낌이었거든요.
정말이고 여러 번 곱씹고 또 곱씹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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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파랑새의 이야기,
그러니까 진정한 행복에 관한 이야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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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우리나라의 ‘한강’작가에 대한 감탄!
(그래서 노벨상 수상 작가의 이야기를 가져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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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젯밤 친구와 대화하면서 느꼈던 작은 따듯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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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종 연애 상담을 해줍니다.
보통은 하소연을 듣고,
잠깐의 위로를 해주고,
속이 풀린 이들이 화해하고 끝나는 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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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야단 비슷하게 칠 때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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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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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어떤 경우냐면,
상대방이 ‘마땅히이러해야 한다’란 말을 할 때입니다.
남편이라면, 남자친구라면, 연인이라면, OOO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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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는,
철저하게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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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이상향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이것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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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니까, 10분쯤을 기다려 줄 수 있잖아.
여자 친구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정도 위로를 할 수 있잖아.
남편이니까, 주말에 이런 일을 대신해줄 수 있잖아.
아내니까, 집안일을 이 정도 해줄 수 있잖아.
엄마니까, 아빠니까, 아들이니까, 딸이니까,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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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했었죠.
희한하게 우리나라는 진짜 정신병자가 병원에 오는 게 아니라,
그 피해자만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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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만들어 놓은 규격에 억지로 맞추어 주는 것은,
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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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아온 세상이 다르고,
그 과정에서 얻어 가는 교훈이 다르며,
그를 통해서 가지는 의지가 다릅니다.
80억 인구 중에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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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억지로 맞춘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을 파괴하는 어마어마한 자학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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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부분에서,
경험이 없어서, 어찌어찌,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인간은 마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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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변화된 모습도
사실은 인간의 변화된 모습이고,
그도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도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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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폭력입니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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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 좋다는걸,
우리는 이미 더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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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랑새는 타인에게 주는 순간
날아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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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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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친구와 대화하면서 따듯했다고 했죠.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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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선 노력하려고 해도 안 되는걸, 옆에서 알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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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말 많은 잔소리꾼으로 넘겨도 될 저를 고마운 사람으로 받아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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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그에게 그러합니다.
그가 어떤 행위를 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힘들 때 투덜거림을 들어주는 게 감사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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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끔 안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보단 그런 적이 몇 배는 더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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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상대방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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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이 든든합니다.
용기도 많이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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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힘들고 고민할 일이 많습니다.
이달 말까지 끝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네요.
그런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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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많이 듭니다.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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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아가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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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자리에서 저 자신을 찾아가면서,
제 진정한 행복, 또는 사명을 찾아서 갑니다.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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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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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혼자가 아니란 생각 덕에 무척이나 건강한 잠을 잤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셨으면 합니다. 작성하는 직장인의 글쓰기는 지금 리뉴얼 중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을 정해서 계획서와 함께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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