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9 마음나누기

알고 있다. 착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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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포트 록 파티(Potluck party)라고 참석자들이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나눠 먹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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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자기 나라의 음식들을 가져와서,
나눠 먹는 자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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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김치전 믹스를 만들어가서, 파티장에서 직접 구워 대접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 왔던 다른 친구는 떡볶이를 준비해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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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김치전은 문전성시를 이뤄서 많은 이들에게 팔려나갔는데,
다른 친구의 떡볶이는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이에 대단히 실망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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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왜 외국인들이 떡볶이를 먹지 않았을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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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매워서 그랬을 거란 생각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그 친구는 그것도 생각해서,
매운 떡볶이와 맵지 않은 궁중 떡볶이를 같이 준비했거든요.
둘 다 인기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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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둘이서 이야기해 봐야,
한국인 둘인데,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다운타운의 유명 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인도인 친구를 불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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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를 위해서 두 종류의 떡볶이와, 김치전과 파전, 그리고
귀한 소주까지 준비해야 했지요.
예나 지금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은 어딜 가도 귀하게 대접받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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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걸 먹어보고, 떡의 식감 때문에 싫어했을 거란 답을 주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선호하는 쫄깃한 식감이,
외국인들에겐 이질적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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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다운타운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대접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그는,
떡볶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국적별로 다양하게 반응하는 음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줬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마른 오징어를 구워 먹는 것을
서양인은 싫어한단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냄새가 서양인들이 견디기 어렵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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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화를 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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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음식이라도,
문화적, 인종적, 성격적으로 다른 이가 접한다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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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차이를 알아차린 것에 대해서 대단히 뿌듯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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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치 차이를 아는 훌륭한 세계인이 된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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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꽤 오랫동안 살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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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개 월 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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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한 한국 식당이 열었는데,
이 식당의 주메뉴 중에, 떡볶이가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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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뉴스를 보고, 한참을 비웃었습니다.
시장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일을 시작한다고요.
외국인은 떡볶이의 식감을 싫어하는데,
그걸 팔겠다고 나가면 어쩌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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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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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더군요.
그걸 먹은 외국인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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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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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의 사건과 아래의 상황의 시간 차이는 거의 20년입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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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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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레딧 등에서 떡에 대한 서양인의 반응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바뀐 게 아닌가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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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통해서 알 게 된 것은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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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여전히 떡의 식감을 서양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단 겁니다.
다른 하난, 그렇다고 그게 떡볶이를 안 먹을 만큼은 아니란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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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떡볶이가 서양 문화권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은,
BTS를 비롯한 K팝 스타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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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타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그 팬들이 먹고 싶어 하게 된 거죠.
그리고, 긍정적인 자세로 그 음식을 대하다 보니,
잘 먹을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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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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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
아니 더 정확하게는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던 생각…….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이 의식을 확장하면,
선불교의 위대한 "일체유심조"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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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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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저의 착각이었단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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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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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느 순간 제 머릿속에서 고착되어서,
떡의 식감은 서양인은 싫어하니,
그걸 가져다 파는 건 바보 같은 짓이란 생각으로 고착화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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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깨어있고,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타인에게 열린 생각을 하라고 했는데,
사실 저부터가 꽉 막혀 살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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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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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충격이어서 며칠이나 혼자서 부끄러워했습니다.
참고로, 이일이 있은 뒤에 뭐든 다시 돌아 보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가 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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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무지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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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던 일 하나 풀어봅니다.
​
from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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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렇게 다시 돌아온 이유를 조금씩 밝혀봅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많은 글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