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9 마음나누기

나아가 경험하라

1998년 6월 25일 저는 프랑스의 한 축구장에 있었습니다.
1997년 12월 군대를 전역하고,
IMF의 엄혹한 시절을 견디고,
떠난 유럽 여행에서 기적과 같은 월드컵 직관의 기회가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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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벨기에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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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진 상황이어서 16강 진출은 물 건너 간 상황이었습니다.
2패의 결과로 월드컵 중에 차범근 감독은 중간에 경질된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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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가 구한 표는 벨기에 대사관에 배정된 한국 교민을 위한 표였습니다.
이미 2패를 했고, 감독도 교체된 상황이어서 많은 교민들이 응원을 포기했었습니다.
분명 한국 교민을 위해서 배정된 응원석에 갔는데 주변에 모두 벨기에 사람들만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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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들이 표를 넘긴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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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기의 결과는 1:1 무승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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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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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게는 정말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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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혼’이란 말로만 설명 가능한 한국 대표팀의 투지가 그대로 전달되어 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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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날 때, 축구 경기를 보면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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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이 제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날의 경험으로 제게 큰 변화가 몇 가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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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전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보이는 대한민국의 투혼이 너무나 멋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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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전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나누고 싶은데, 주변에 나눌만한 사람이 없어서, PC 통신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날 그 경기를 함께 봤던 수많은 이들이 그 글에 공감해 줬고, 칭찬해 줬습니다.
그 기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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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경 전 대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관계자가 나와서는 사고가 크게 났다고 움직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당시 뉴욕 업타운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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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경악했던 911 사건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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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탈출을 해서 두 번째 타워가 무너지기 전 찍었던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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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때 사회적 페닉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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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 거 넘어가는 사람들도 보았고,
그 북적거리던 뉴욕 멘하탄의 거리가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던 순간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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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공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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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를 찾는 판낼과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촛불들,
그리고 의료센터에서 헌혈을 하겠다고 줄을 선 시민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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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렇게 뉴욕에 있으면서 제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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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있을지언정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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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가 가진 시민에 대한 관념과 믿음의 근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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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8일 오후 6시, 전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멍하니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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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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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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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기를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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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추억이 있던 저는 4년 만의 대한민국 팀의 발전에 가슴이 웅장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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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극적인 발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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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과 2002년 월드컵의 경험은 제게 어떤 신호를 주는 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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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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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메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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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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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입으로 욕을 있는 대로 하면서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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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군가 저를 부르면 웃으면서 대답하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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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들고 짜증 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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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태안반도는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 범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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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문가가 TV에 나와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100년이 지나고 깨끗해질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재앙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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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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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원봉사자가 가서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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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기름을 닦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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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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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명씩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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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멍청한 사람들 중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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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를 내고, 휴가를 내고, 그냥 별생각 없이 주말에 내려가서, 구시렁거리면서 돌을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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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힘들어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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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검은 해변이 투명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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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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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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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愚公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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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예화가 아니라 진실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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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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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그냥 푸욱 자고 싶은데, 뭔가 하나 주섬주섬 챙겨서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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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별거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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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짜증 나니까, 나도 뭐 하나 해야겠다 싶어서 간 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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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던 대통령에게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한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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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서 촛불 하나 들고 잠깐 걸은 게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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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가볍게 걷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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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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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상에 앉아서 살아온 세월을 돌아봅니다.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그냥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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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보다가 지금의 나를 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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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보는데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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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제가 여러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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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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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전에 제게 조언을 구했던 친구의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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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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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네가 무엇을 얻든 간에 결국은 너를 구성할 요소가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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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투덜 거림만 남고, 그냥 설렘만 남고, 그냥 어떤 감정의 편린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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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중에 네게 보석이 되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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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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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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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인터넷에 유명한 명언이 있죠. 할지 말지 고민하면 하고, 살지 말지 고민하면 사지 말고, 말할지 말지 고민하면 말하지 말라고요. 다른 건 모르겠고, 할지 말지에 대해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