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25일 저는 프랑스의 한 축구장에 있었습니다.
1997년 12월 군대를 전역하고,
IMF의 엄혹한 시절을 견디고,
떠난 유럽 여행에서 기적과 같은 월드컵 직관의 기회가 생겼죠.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
한국은 이미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진 상황이어서 16강 진출은 물 건너 간 상황이었습니다.
2패의 결과로 월드컵 중에 차범근 감독은 중간에 경질된 상황이었죠.
당시 제가 구한 표는 벨기에 대사관에 배정된 한국 교민을 위한 표였습니다.
이미 2패를 했고, 감독도 교체된 상황이어서 많은 교민들이 응원을 포기했었습니다.
분명 한국 교민을 위해서 배정된 응원석에 갔는데 주변에 모두 벨기에 사람들만 있었죠.
교민들이 표를 넘긴 거였습니다.
그 경기의 결과는 1:1 무승부였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정말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투혼’이란 말로만 설명 가능한 한국 대표팀의 투지가 그대로 전달되어 왔거든요.
경기가 끝날 때, 축구 경기를 보면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이 제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날의 경험으로 제게 큰 변화가 몇 가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날 이후, 전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보이는 대한민국의 투혼이 너무나 멋있었거든요.
이날 이후 전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나누고 싶은데, 주변에 나눌만한 사람이 없어서, PC 통신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날 그 경기를 함께 봤던 수많은 이들이 그 글에 공감해 줬고, 칭찬해 줬습니다.
그 기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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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경 전 대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관계자가 나와서는 사고가 크게 났다고 움직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당시 뉴욕 업타운에 있었습니다.

세계가 경악했던 911 사건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죠.
최대한 탈출을 해서 두 번째 타워가 무너지기 전 찍었던 사진 한 장.

저는 이때 사회적 페닉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 거 넘어가는 사람들도 보았고,
그 북적거리던 뉴욕 멘하탄의 거리가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던 순간도 봤습니다.
사고가 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공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죠.

실종자를 찾는 판낼과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촛불들,
그리고 의료센터에서 헌혈을 하겠다고 줄을 선 시민들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뉴욕에 있으면서 제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상처는 있을지언정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이것은 제가 가진 시민에 대한 관념과 믿음의 근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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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8일 오후 6시, 전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멍하니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그 경기를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1998년의 추억이 있던 저는 4년 만의 대한민국 팀의 발전에 가슴이 웅장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극적인 발전이었으니까요.
1998년과 2002년 월드컵의 경험은 제게 어떤 신호를 주는 거 같았습니다.
"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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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어느 날
저는 입으로 욕을 있는 대로 하면서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누군가 저를 부르면 웃으면서 대답하긴 했지만요.
정말 힘들고 짜증 났거든요.

2007년 12월 태안반도는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 범벅이 되었습니다.
어떤 전문가가 TV에 나와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100년이 지나고 깨끗해질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재앙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한 겁니다.
누가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자원봉사자가 가서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기름을 닦은 겁니다.
그게 알려졌습니다.
한두 명씩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 멍청한 사람들 중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연차를 내고, 휴가를 내고, 그냥 별생각 없이 주말에 내려가서, 구시렁거리면서 돌을 닦았습니다.
다들 힘들어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순간 검은 해변이 투명해지더군요.
어느 순간 말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우공이산’
(愚公移山)
이게 예화가 아니라 진실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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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의 밤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그냥 푸욱 자고 싶은데, 뭔가 하나 주섬주섬 챙겨서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그냥 별거 아니었습니다.
답답하고 짜증 나니까, 나도 뭐 하나 해야겠다 싶어서 간 거였으니까요.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던 대통령에게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한 집회.
그냥 가서 촛불 하나 들고 잠깐 걸은 게 답니다.
그냥 그렇게 가볍게 걷고 왔습니다.
대통령이 바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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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상에 앉아서 살아온 세월을 돌아봅니다.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그냥 해봅니다.
그렇게 해보다가 지금의 나를 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보는데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하더군요.
그러다가 제가 여러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말이죠.
그리고 며칠 전에 제게 조언을 구했던 친구의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안에서 네가 무엇을 얻든 간에 결국은 너를 구성할 요소가 될 거라고.
당장은 투덜 거림만 남고, 그냥 설렘만 남고, 그냥 어떤 감정의 편린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중에 네게 보석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답하겠습니다.
from 무상
사족: 인터넷에 유명한 명언이 있죠. 할지 말지 고민하면 하고, 살지 말지 고민하면 사지 말고, 말할지 말지 고민하면 말하지 말라고요. 다른 건 모르겠고, 할지 말지에 대해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