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영어로 글의 제목을 적었습니다.
쓰면서도 한글로 적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만….
한국어로는 잘 안 사는 거 같아서 저렇게 써 버렸습니다.
제목에 붙어 있는 ‘Miserable’도 ‘Poor’를 쓸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레미제라블의 오마주 하고 싶었기에 그냥 사용했습니다.
한국어로 사용하려고 했던 제목은 ‘착하고’ 불쌍한 사람은 없다. 였는데요.
아무래도 안 살 더라고요.
여하튼 글도 시작하기 전에 사족이 더럽게 길었습니다.
시작합니다.
(본문은 평어로 작성합니다.)
한 10여 년쯤 전에 파워 블로거가 되고, 뭐가 그리 잘났는지 여기저기 강의도 하러 다니고, 사람들 상담도 하고, 여하튼 오지랖 넓게 싸돌아다녔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었는지, 제 코가 석자임에도 작은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교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의 통렬한 반성과 그에 따르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만, 여하튼 지금 중요한 것이 그게 아니다. 당시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이들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나면서 겪었던 충격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난 당시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다 날리고, 가족들과 단절되어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 상담해 주는 일들을 했었다. 다단계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나이 든 노인, 젊은 청년, 가정주부 등등,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너져갔었다. 당시에 다단계의 문제를 두 눈으로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주 싸구려 위로 말고는……

10여 년이 지나고, 난 글 쓰는 일을 접고, 몸쓰는 일을 하다가, 다시금 글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다만 과거에 쓰던 글이 소설이나 수필 같은 거였다면, 다시금 쓰는 글은 기획과 마케팅 등에 관련된 글이었다. 다양한 사업에 대한 글을 쓰고, 거기에 맞춰 설명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블록체인, 그러니까 암호화폐에 관한 것도 많았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썼지만 그것이 아무래도 잘 팔렸기에 이 주제로 여기저기 자주 설명을 하러 돌아다녔었다.
그렇게 설명회를 돌아다니가,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10년 만의 재회라고 해야 하려나.
그는 내가 10여 년 싸구려 위로를 남발하고 다닐 적, 몇 번에 걸쳐 상담을 했던 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기술 설명을 하기 위해서 갔던 그곳은 다단계 사업장이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변명을 좀 하자면, 책임져야 할 직원들이 있고, 내야 할 공과금이 있는 상태에서 기술 설명만 해주면 된다는 다단계 업체의 제안은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다단계 업체에 돈을 투자하면 제공하는 OOO 코인의 기술에 대해서만 설명해 주면 된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승낙했었다. 아 조금만 더 솔직하자면, 그리 고민하진 않았다. 10년 사이에 나도 많이 물이 든 탓이겠지.
여하튼 그 노인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했다.
여기 다단계 업체인 거 아냐고 물었다. 진짜 조심스럽게…..
노인은 당연히 알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자기는 이제 다단계로 돈을 번다고 말했다. 자신도 다단계가 어차피 터질 거 다 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터질 다단계라도, 초반에 들어가면 괜찮은 수익이 나기 때문에 치고 빠지는 전략을 쓰면 별문제가 없다고 설명을 했다.
그의 설명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이득을 볼 수 있으니까, 남들이야 어찌 되던 상관없다고….
참고로 내가 설명회에 참석했던 해당 다단계는 터졌다.
몇 백억의 피해 금액을 내놓고 몇 천명의 피해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TV 인터뷰를 하는 피해자들 중에는 그 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노인들에게 이렇게 사기를 치면 우린 뭘 먹고 삽니까!"
그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다. 다 알고 했다. 그가 몰랐던 것은 그에게 그 사업이 초기라고 했던 사람이 거짓말쟁이였다는 것이다. 요즘엔 다단계에서 마케팅을 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 그거라고 하더라. 아직 사업 초기이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식 시장엔 ‘작전주’라는 것이 있다. 거래량이 많지 않은 주식을 특정 세력들이 자기들끼리 거래하면서 가격을 올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투자하면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한국의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교묘하게 진행된다. 불법이긴 하지만 여전히 주식시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이란 것이다. 정상적인 투자가라면, 이런 작전주는 무조건 피하라고 조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투자가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 괜찮은 주식을 하나 찾았는데 거기에 투자하란 거였다. 뭐가 그렇게 괜찮은 주식이냐고 물었더니, 100% 작전주라는 거였다. 작전주라 주가가 무진장 오를 터이니 사고 적당한 선에서 팔고 나오면 돈을 번다고 했다.
그 메시지를 보낸 투자가는 작전주에 투자를 잘못해서 아내와 이혼하고 아직도 자기 딸을 보기 위해서 한 달을 고생고생하는 친구다. 작전주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며 울분을 토하던 친구였는데, 저렇게 메시지를 보내더라.
우리는 아주 손쉽게 가난한, 또는 불쌍한 사람을 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기 쉽지 않다.
가난해져 보면 안다. 불쌍해져 보면 안다. 괴로워 보면 안다.
독해지고, 악해지고, 잔인해진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어쩌면 손쉽게 이걸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진짜 힘든 극기훈련을 받아본 이라면 보편적인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쉬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이 힘들어지면 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독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진짜 묘하게 레거시 미디어(기존의 언론)에서는 약자들은 착하다는 식으로 포장을 한다. 케이블 TV를 보다 보면 나오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돕자는 광고에서 보면 약자들은 한없이 선하게만 그려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착각을 하게 된다.
동정을 일으키는 이들은 착하다고.
그런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독해진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당신은 왜 이 글을 쓰냐고?
그러니까 불쌍한 사람들이 착하지 않으니까,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적으려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불쌍한 사람들이 착하지 않으니까, 그들을 동정하지 말고, 공격하라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답은 아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은 착할 수가 없다. 독해질 수밖에 없고, 악해질 수밖에 없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독한 사람, 악한 사람, 공격적인 사람의 수를 줄이려면 그들이 더 이상 불쌍해지지 않아야 한단 거다.

미디어에서 노출된 "착한" 불쌍한 이들을 찾지 말자.
그냥 그들이 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노인은 다단계로 사업으로 졌던 빚을 10년째 갚지 못하고 있었고, 그 투자가는 여전히 딸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노인이 빚이 없었다면, 그 투자가가 주식으로 진 빚을 청산하고 딸을 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음유함을 가지지 않았을 터다.
from 무상
사족: 요즘은 그렇다. 상황을 보는 눈은 바뀌는데, 희한하게 결론은 결국 제자리인 경우가 많다.
사족 둘: 하고 싶은 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착해서’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착해지게 하기 위해서 돕자는 거다. 선후가 바뀌었지만, 결과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