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20세기의 마지막 해,
어쩌면 인류의 멸망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하던 그 시기,
그해 5월 전 그 도시에 처음 도착했습니다.
첫 시작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뭔가 꼬인 것뿐이었거든요.
우선 기차가 꼬였습니다.
전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원래의 계획은 자정에 야간열차를 타고 뉴욕으로 내려오는 거였습니다.
밤 열차를 타고 열차 안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른 아침의 뉴욕에 도착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너무 늦게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거든요.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려다,
아니 그냥 화를 내다가 늦었습니다.
기차역에서 그대로 밤을 지세야 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기차역에서 동양인 혼자서 짐을 가득 들고 기다린다는 건,
그렇게 즐거운 기억은 아닙니다.
두려운 기억이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시간을 보냈고,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뉴욕 거리에는 비가 한창 오고 있었죠.
이민 가방을 두 개나 들고,
한창 바쁜 그 도시를 지나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관심과, 불편함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제게 향한 것 같았죠.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동산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집주인의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기차를 놓쳤다는 사실을 먼저 말했죠?
예, 전 집주인과의 약속을 2시간이나 늦었습니다.
집주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겐 방을 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사정을 설명하고 한참을 빌었습니다.
결국 방세를 100불 더 올려주기로 하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집 열쇠를 받아들고,
여전히 내리를 비를 맞으며,
천천히 계약한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집주인의 사무실은 브로드웨이 27번가,
제가 업은 집은 브로드웨이 29번가,
겨우 2블록의 거리였습니다만,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게 걸어가는 저를 툭툭 치고 가는 사람들,
쓰러질 듯 휘청이며,
대단히 불쌍한 모습으로 기어가듯 걸어갔습니다.
만약, 이것이 제 뉴욕에서의 첫 기억이었다면,
전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6년이나 절대로 버틸 수 없었겠죠.
제가 계약한 집은, 원래 호텔이었던 것을,
임대주택으로 개조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건물 입구에 도어맨이 서 있었죠.
사실 대단히 싸구려 아파트여서,
도어맨은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야간 수상한 사람이 들어오지 않게 경비를 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그날은 그렇게 일하던 경비가,
무슨 일었는지, 입구 앞에 나서서 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구로 들어오는 제게 웃으며 물었죠.
"어서 오세요. 입주민님, 첫날이신가 봐요?"
인도에서 이민 온 친구였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형과 함께 살고 있고,
파트타임으로 아파트 경비 일을 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경비 사무소에서 하릴없이 거리를 보고 있다가 저를 봤다고 하더군요.
세상의 모든 짐을 다지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우울하게 쓰러질 듯 걸어오는 제 모습이 무척 안되었답니다.
그래서 웃으며 힘내라고 말해주려고 슬쩍 나왔는데,
제가 건물로 들어오기에,
더욱 신나서 인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제 가방을 들어주고,
제 방까지 안내해 주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주다가,
결국은 저녁때,
그 친구의 방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까지 잡았습니다.
그날, 그 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그와 함께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눴고,
술도 한잔하면서 뉴욕의 다양한 거리에 대해서 잡담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그의 형이 돌아왔고,
그 형은 동생의 새 친구를 위해서,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주기 시작했죠.
그 형이 일하던 식당은 미쉐린에서 인정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죠.
그렇게 요리를 먹는 중에 재즈 바에서 연주를 하는 이웃이 웃으며 방문했고,
또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순간, 작은 모임이 커다란 파티로 바뀌었습니다.
다음 날, 뉴욕시의 모든 사람이 제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걸 알만큼 말이죠.
정말, 다음 날, 서류 등록을 위해서 학교로 나설 때,
길거리에서 케밥을 파는 아저씨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기죽지 말란 이야길 해주더군요.
우울하고,
슬프고,
괴롭게 시작했던,
뉴욕의 첫날은,
기적처럼,
번잡하고, 즐겁고, 다양한
추억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와 저의 사랑은 시작되었죠.
그 도시에서의 첫날이었습니다.
from 무상
사족: 다시 시작합니다. 이사는 잘했지만, 짐 정리는 앞으로도 한참을 더 해야겠네요.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예전에 이사했던 경험이 떠올라 적어봤습니다.